ICON-EMPTY.png THE NIGH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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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1980년대.
 


베트남전이 종전되고 반전주의 흐름이 물살을 탄다. 미국은 경제 침체기를 이겨냈으나, 역효과로 동구권은 궁핍에 시달리고 있다. 하지만 미국 내에서 보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시대였다. 
​그러나 마이클 잭슨과 마돈나가 이끌어낸 화려한 디지털 문화 이면에는 냉전 막바지의 날선 경계심과 인권 운동의 암흑기가 있다. 최고의 인기를 달리며 연임중인 레이건 정부의 적극적인 묵인 하에 사회는 다시 두 쪽으로 양분되었다. 인간과 뮤턴트, 사람과 괴물, 호모 슈페리어와 호모 사피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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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들과 우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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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 중산층 기독교 가정에서는 나서서 뮤턴트를 혐오하는 교양 없는 짓은 하지 않지만 자식이 평범하고 건강하게 태어난 것을 감사하며 살아간다. 시골 교회의 목사는 주일마다 돌연변이가 주의 뜻에 어긋나는 존재라고 설교하며, 뉴스 채널에서는 뮤턴트가 일으킨 사건 사고를 자극적으로 포장해 방영한다. 그러나 나와 매일 아침 인사하는 조금 소극적이고 상냥한 이웃 청년이나, 매일 들르는 가게의 주인, 또는 내 자식이 뮤턴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구태여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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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연변이로서의 힘을 선한 곳에 쓰겠다며 엑스맨이 출범한 지도 이십여 년, 그러나 세상이 나아질 기미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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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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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수 약 4만의 항구도시 메인 주 체스터헤이븐(*가상의 도시). 엑스맨과 브라더후드 오브 뮤턴츠, 두 집단이 크게 충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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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마찰은 최악의 비극으로 결말을 맺었다. 전투 도중 엑스맨 소속의 뮤턴트 ‘미라클’의 뮤테이션이 폭발한 것이다. 순식간에 일대가 초토화되었고, 폭심부에 있던 많은 뮤턴트들이 죽거나 크게 다쳤다. 겨우 살아남은 이들은 그대로 도시 밖으로 ‘튕겨져 나갔다.’ 제발로 도망치거나 탈출한 게 아니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수십 마일이나 떨어진 곳으로 옮겨져 있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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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발과 동시에 미라클은 영원히 사라지고 말았으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명해줄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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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도 수백의 인명 피해가 있었다. 손상이 가장 심했던 구역은 본디 엑스맨의 미 북동부 거점으로 사용되던 웨어하우스와, 도시 경제의 많은 부분을 도맡고 있던 군수 회사 ‘프레더릭 인더스트리’의 본사 건물이 있던 항구 유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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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맨 측에서는 이에 책임을 지고 도시 복구를 지원하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체스터헤이븐 시에서 이를 거절했다. 대신 남겨진 엑스맨의 웨어하우스와 장비를 강제 압류하고 두 집단에게 절대 접근 금지 명령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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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집요한 기자들마저 도시 일부를 날려버린 사건의 배후가 두 뮤턴트 집단이라는 사실 외에는 보도할 수 없었다. 사건 이후의 언론 통제 때문이었다. 수많은 추측만이 난무하는 사이 경제와 치안이 급격히 악화됐고, 시민들은 복구 작업에 지지부진한 시 대신 사건의 원흉으로 지목된 이들에게 원망의 화살을 돌렸다. 뮤턴트가 '위험하고 통제되지 않는 존재'라는 주장이 다시 힘을 얻기 시작했다. 

수 년 만에 체스터헤이븐은 미 전역에서 가장 반 뮤턴트 정세가 강한 도시중 하나가 됐다. (하지만 여전히 미국에서 인구 비율 대비 뮤턴트가 가장 많이 사는 도시 중 하나이기도 하다.)

느리게나마 나아지고 있던 뮤턴트에 관한 인식은 순식간에 악화됐다. 예의와 도덕의 이름으로 감추어져 있던 차별이 다시 물 위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체스터헤이븐 교외 지역 외딴 곳에서 일어난 일가족 몰살 사건을 기점으로, 60년대 이후 사라졌던 뮤턴트 사냥이 부활했다. 베트남전 패전의 탓을 뮤턴트에게 전가하거나, 뮤턴트와 일반인 ‘양쪽 모두를 위해’ 뮤턴트 아동을 입학 시기에 선별해서 분리 교육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는다. 지역사회 정치 후보자들은 뮤턴트 채용 불이익이나 입대 시의 신체 검사 강화, 국경 지역 검문 강화를 공약으로 내걸기도 한다. 평범한 사람들은 안전한 삶을 위한 공약에 환호하며 표를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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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우리들만이 세상이 점점 나빠지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오로지 우리에게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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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1987년 11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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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변이 일어났다. 세레브로상에서 체스터헤이븐의 모든 뮤턴트 신호가 동시에 사라졌다. 최악의 경우, 대규모의 뮤턴트 처형 사태가 벌어졌거나, 아니라도 도시에 사는 뮤턴트들에게 커다란 문제가 생긴 것이 분명했다. 엑스맨과 브라더후드 오브 뮤턴츠, 두 집단은 이 전무후무한 단절 사태를 조사하기 위해 7년 만에 다시 체스터헤이븐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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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만이다. 우리는 잃어버린 사람들을 애도할 시간조차 가질 수 없었다. 한때 함께였던 우리 사이에는 아직 깊은 상처의 골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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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MEN


전원 뮤턴트로 이루어진 슈퍼히어로 집단. 자비에 영재 학교 산하의 재학생 및 졸업생으로 이루어져 있다. 

'62년 설립. 베트남 전쟁때 구성원 대부분이 징집되며 해산되었으나 종전 이후 1977년, 현재의 리더 아래에서 '새로운 엑스맨'으로서 재결성되었다. 이후로 몇 번이고 세상을 구했지만, 엑스맨을 향하는 세간의 시선은 여전히 곱지만은 않다. 똑같이 이타를 위해 목숨을 내던져도 다른 이들이 영웅이 되는 동안 엑스맨은 기행하는 별종들, 사회에 불필요한 위협을 가하는 자경주의 집단으로 비춰지기 십상이었다. 

81년 사건 이후 관계자 전원에게 수배 명령이 떨어졌고, 여론 또한 그들에게서 등을 돌렸다.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여전히 세상이 나아지리라고 믿는다. 서로 다른 자들이 이해하고 용서하고 함께 살아가는 미래가 언젠가는 도래하리라고. 사랑과 희망. 이것이 엑스맨의 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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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목표는, 체스터헤이븐에 있는 뮤턴트들을 보호하고, 도시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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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otherhood of Mutants


엑스맨의 온건주의 방식을 거부하는 강경주의 뮤턴트 집단. 인간 사회의 뮤턴트 차별과 탄압을 중지하기 위해 강건하고 폭력적인 방법 또한 불사한다. 

'62년, 엑스맨 설립 직후 구성원 간 이념 차이로 인해서 갈라져 나왔다. 81년 사건으로 지도자가 체포되며 크게 타격을 입고 한번 흩어졌다 재 결성되었다. 현재까지도 구성원 대부분이 수배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쫓기고 손가락질 받는 것은 익숙하지 않은가?

(구성원 간 다소의 의견과 관점의 차이는 있으나) 최초 설립 목적은 사피엔 대신 뮤턴트가 지배하는 세상을 이룩하는 것이었다. 현재까지도 반 뮤턴트 인사 암살 및 뮤턴트 차별 무력 저지를 주 목표로 활동하고 있다. 때문에 지금 세기 세간에는 극단적인 친 뮤턴트 테러리즘 집단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런 행보의 근원에는 뿌리 깊은 뮤턴트 차별의 역사가 있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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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목표는, 체스터헤이븐에서 뮤턴트를 해하는 집단을 찾아내어 처리하는 것이다. 단 한 놈도 남기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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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스터헤이븐의 우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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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텔레비전에 나오는 영웅도 테러리스트도 아니다. 당신은 체스터헤이븐에서 살아가던 사람으로, 조금 이상한 구석이 있다는 것을 제외하면 평범한 사람들과 그리 다르지 않다. 최근 겪고 있는 곤란한 일을 제외하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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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아침, 당신은 면도기를 들고 새로 자라나기 시작한 파란색 수염을 밀다가, 커피를 받으며 직원과 시시한 농담을 주고받다가, 어제 일으킨 소란으로 인해서 직장에서 당일 해고 통보를 받다가, 문득 깨닫는다. 이 일을 처음 겪는 게 아닌 것 같다고. 한번 느낀 기시감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 갔다. 이윽고 당신은 거부할 수 없는 진실을 알게 된다. 당신은 1987년 11월 24일을 기점으로 영원히 같은 삼 일을 반복하고 있다. 


어느 11월 24일 아침, 당신은 수염을 밀다가, 직원과 잡담을 하다가, 해고 전화를 받다가 생각한다. 더는 이렇게 지낼 수만은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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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원하는 것은, 그저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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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tant and Proud